2018年7月27日金曜日

レジデンス研究者 滞在レポート②

6月18日から当館に滞在しているキムさんのレポートをお届けします。
福岡の「ゆかり」からひもとく、アジアやアートについてのテキストをぜひご覧ください!
*English version is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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執筆者:キム・ジョンヒョン(金正賢)
(1985年ソウル生まれ/批評家、インディペンデント・キュレーター)


『福岡の「ゆかり」』
アジ美に滞在中、ここ数年韓国美術界で話題になっている「アジア」について考えてみたかった。しかし約一ヶ月という限られた時間を、研究室に籠って山のような書籍や資料に向かうことだけに使うのはもったいなので、複写禁止の貴重資料とアジ美所蔵品を研究する時間以外は、こまめに人に会い、様々な場所をまわった。これまで北九州、久留米、大分を訪れ、今後山口と広島を訪れる予定だ。
先日九州産業大学美術館が開催したシンポジウムで、川浪千鶴氏(元 福岡県立美術館 学芸課長)の発表を聞く機会があり、その中で「ゆかり」という言葉が記憶に残った。福岡出身でなくても「ゆかり」ある作家たちとプロジェクトを行ってきたという話の中で登場した言葉だ。
出生地でも活動拠点でもない場所と「縁を結ぶ」こと。ソウルを拠点とする私は、この機会にソウルと福岡、そして光州と福岡との縁を結ぶことになるのだろうか?福岡は釜山と近く、釜山の美術界と密に交流をしていると聞き、まだ一度も行ったことがないスペースや、あまり知らない作家やキュレーターの話を聞いて、自分自身が韓国美術界ではなく、ソウル美術界に属するということを再認識させられた。韓国、ソウル、光州、福岡、釜山+平昌(平昌ビエンナーレの資料はアジ美に来て初めて見た)、マレーシアと中国(私の滞在期間と重なったレジデンス・アーティストたち)、日本と東京(日本の現代美術資料との思いがけない出会い)+アジア(アジ美の研究対象等)…
様々な地域区分がごちゃ混ぜになっているが、これらの地域と現代美術には一体どのような関係があるのだろうか?誤解を恐れずに、上に出てくる地域をざっと分類してみると、以下のようになる。
- アジア:地域の集合体
- 韓国、日本、マレーシア、中国:国家、国籍
- ソウル、東京:首都、大都市
- 光州、福岡、釜山、平昌、北九州、久留米、大分、山口、広島:第2・第3の都市、その他の小都市=首都以外の都市
上記の分類から、次のような疑問が浮かんでくる。
- アジア美術のネットワークは、国家や都市のつながりから形成されているのか?韓国におけるアジア美術ネットワークの議論も、やはり地理的なつながりから派生しているのだろうか?
- 韓国美術(国家を代表する美術?)やソウル美術(首都美術?)、釜山の美術(第2・第3都市の美術?)、平昌美術(小都市美術?)をどのように定義できるだろうか?各都市に特有の美術を定義することは、地域特産品を宣伝するブランディング戦略とどう違うのだろうか?今ここにある生活を「発信する(誰に?)」という考え方に、地理的な多様性や違いはあるだろうか?現代美術における地理的思考とはどのようなものであり得るだろう?
- 地方都市を首都以外と定義するのは妥当か?(私はなぜそうした前提でこの投稿を書いているのか?)
- アジア美術と現代美術の関係とは?また現代美術とヨーロッパ中心主義/オリエンタリズムの関係とは?そしてアジア美術とヨーロッパ中心主義/オリエンタリズム/日本帝国主義における大東亜共栄圏構想の関係とは?
- (アジアの)現代美術における、地域交流の目的や方法、結果はどのように変化してきたのだろうか?
- そして最後に、こうした問いは美術批評の語り口(作品の良し悪しを論じる分析と判断の言語)についてどのような問いを投げかけるだろう。美術批評の在り方は批評から文体へ、文体から交流の記録や旅行記といったものに変わりつつあるのだろうか?(SNS上でその傾向は顕著なようだ)
作品について思考する際、こうした問いが役に立つかどうかは分からない。でも個別の問題を深める際も、こうした問い全体を忘れてはいけない。このメモは、いつかきちんと文章化すべき私自身の課題であり、なんとか今後の展示企画にも結び付けていければと思う。
それは「ゆかり」のためではなく、と人情味のない私は思っているのだが…


"The Ties with Fukuoka"
It was the idea of ‘Asia’ which began to rise in the Korean art scene recently that I wanted to think about while I stay in Fukuoka Asian Art Museum (FAAM). However, one month is not enough to review all the materials here and I decided to meet art people and look around museums and art centers as many as possible unless I examine some primary and original materials or collections of FAAM. One day, when I attended a conference organized by Museum of Kyushu Sangyo University, I was caught by a Japanese expression, ‘Yukari(縁)’, meaning the close connection or the ties among people. One of the speakers of the day, Kawanami Chizuru (the former chief curator of Fukuoka Prefectural Museum) mentioned in the context of her projects with the artists who are not born or based in Fukuoka but having some kind of connection.
Making the ties with somewhere you are not born or based in. Am I making such a connection with Fukuoka (at the same time with Gwangju)? Since I came here, I often hear about the Busan art scene, but because I have not much information about Busan yet, I suddenly realized that I’m rather inside of Seoul than in ‘(South) Korea’. Korea, Seoul, Gwangju, Fukuoka, Busan + Pyeongchang(I saw its biennale catalogue for the first time here), Malaysia and China (the nationality of residency artists I met here), Japan and Tokyo (of materials about Japanese Contemporary art) + Asia (the object of FAAM)….
Well, what’s the matter of contemporary art with these mixed geographical names? Though it might be not fully accurate, I sort of those mentioned above,
- Asia: regional union
- Korea, Japan, Malaysia and China: nation, nationality
- Seoul and Tokyo: capital, metropolis
- Gwangju, Fukuoka, Busan and Pyeongchang: the second or third city or small city (besides the capital)
Now, here comes up those questions,
- The Asian art network, is it the connection of countries or cities? What about in the case of Korea?
- How to define the art in Korea (the national art?), in Seoul (the capital art?), in Busan (the second city art?), in Pyeongchang (the small city art?)?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sales marketing strategies and this kind of artistic definition? How this way of thinking – sending the message (to whom?) here and now could be varied and transformed according to the difference of geographical position? What could be the geographical thought in Contemporary art?
- Is it okay to define the second or third city or small city as the outside of the capital? (Why I presumed so in this posting?)
-What’s the relation between the Asian art and the Contemporary art? What’s the relation between the Contemporary art and Anglo-eurocentrism/Orientalism? What’s the relation between the Asian art and Anglo-eurocentrism/Orientalism/the idea of the Greater East Asia of Japanese Imperialism?
-How the goal, way and the effect of cultural exchanges in Contemporary art (in Asia) have changed?
-In the end, how all these questions could be concerned about the language of art criticism? Does the matter of art criticism moved from the critic to style, then, from the style to friendship or travelogue? (It quite seems so in the world of social network.)
I am not sure how much these questions could be interesting when we see and think about the art works, but it seems quite apparent to keep in mind anyway. I should find a chance to develop these thought by writing deeply and reasonably as well as to create in forms of exhibition too.

큐레이터 레지던시 레포트 2
: 후쿠오카의 '유카리'(縁, 인연)
후쿠오카 채널? 서울의 ‘내부’에서 나는 지역 채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2년 전 광주비엔날레 준비 포럼에서 ‘서울 미술계의 동향’에 대한 발표를 맡았던 적 있지만, 광주에서 서울에 관해서 말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의식하지 못했다. 국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지원해 후쿠오카에 오기 전에도 예술과 지역이라는 화두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내가 알아보고 싶던 건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아지비)의 활동과 후쿠오카 트리엔날레라는 국제적인 행사의 기획 방식이었다. 최근 몇 년 한국 미술계에서 주요 화두로 부상한 ‘아시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후쿠오카식 (뮌스터조각) 페스티벌 모형을 확인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였다.
그렇지만 첫 주부터 연구 계획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이 레지던시가 연구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국제 문화 교류’의 일환이라는 걸 뒤늦게, 새삼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선 지원 사업의 구조가 그렇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ACC)과 후쿠오카 아지비의 교류 사업으로,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기획안을 ACC에 제출하게 되어있다. 약 한 달간의 방문 연구 기간에 나는 무엇을 보고 듣게 되는 걸까? 제한된 시간에 연구실에 틀어박혀 다 읽지도 못할 책과 자료하고만 씨름하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자료는 복사하고 책은 구입하기로. 복사금지 자료- 소장품 리스트와 소장품 중 영상 파일을 집중 검토하는 시간 외에는, 만남과 탐방이 과제가 된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성실히(?) 술자리를 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키타규슈, 구루메, 오이타, 야마구치와 히로시마(예정) 등등
규슈산업대학 미술관이 주최한 포럼에서 카와나미 치즈루(전 후쿠오카현립미술관 학예과장)의 발표를 듣던 중 ‘유카리’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말로 옮기면 인연이라는 뜻인데, 후쿠오카 출신이 아니더라도 인연이 있는 작가들과 프로젝트를 해왔다는 이야기 중에 나왔던 말이다. 출생지와 활동 거점이 아닌 곳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 내 경우에 비교한다면 서울에 사는 내가 이번 기회에 (광주와) 후쿠오카와 인연을 맺게 되는 셈일까? 후쿠오카는 부산과 가까워서 부산 미술계와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다는데,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공간이나 잘 알지 못하는 작가나 기획자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내가 한국 미술계가 아니라 서울 미술계에 속한다는 걸(그것도 반푼어치겠지만) 의식하게 된다. 한국, 서울, 광주, 후쿠오카, 부산 + 평창(비엔날레 자료집을 여기 와서 처음 봤다), 말레이시아와 중국(체류 기간이 겹친 레지던스 작가들), 일본과 도쿄(일본 현대미술 자료를 뒤적거리다 마주치는) + 아시아(아지비의 연구 대상)…
그런데 범주가 뒤죽박죽인 이런 지리적 명칭과 현대미술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개념적 오류의 위험을 무릅쓰고 앞서 언급한 지역을 거칠게 분류해보자면,
- 아시아: ‘지역’ 연합
-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중국: 국가, 국적
- 서울, 도쿄 : 수도, 대도시
- 광주, 후쿠오카, 부산, 평창, 키타규슈, 구루메, 오이타, 야마구치, 히로시마 : 제2, 3의 도시, 소도시 (‘수도 외’ 도시)
관련해서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 아시아 미술의 지역 연합은 국가 간 연합인가, 도시 간 연합인가? 한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 미술 논의는 지리적 연합에서 시작하는가?
- 한국미술(국가 대표 미술?)과 서울미술(수도 미술?)과 부산미술(제2, 3도시의 미술?)과 평창미술(소도시?)은 어떻게 정의하는가? 도시 중심의 미술 정의는 지역 특산품 브랜딩 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지금 여기의 삶을 ‘발신한다(누구에게?)’는 사고는 지리적 범주에 따라 어떻게 분화되고 변주되는가? 현대미술에서 지리적 사고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 지방을 수도의 바깥으로 정의하는 건 타당한가? (나는 이 포스팅에서 왜 그렇게 전제했는가?)
- 아시아 미술과 현대미술은 어떤 관계인가? 현대미술은 앵글로유로센트리즘/오리엔탈리즘과 어떤 관계인가? 아시아 미술은 앵글로유로센트리즘/오리엔탈리즘/일본 제국주의 대동아공영권 주장과 어떤 관계인가?
- (아시아의) 현대미술에서 지역 교류의 목적과 방법과 결과는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 이 모든 것과, 현대미술에서 작품의 좋고 나쁨을 가리고 논하려는 분석과 판단의 언어는 어떻게 관련되는가? 비판에서 문체로, 문체에서 다시 친목교류(?)나 여행기로 감상의 언어가 변화했는가?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꽤 그렇게 보인다.)
현대미술은 개인의 주관적 사고 표현을 흥미롭게 보여주지만, 보기에 별로 흥미롭지 않은 작업 중에 개인 단위의 창작 행위를 넘어서 현대미술의 물적, 정신적 토대를 탐사하려는 것들이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이면서 보기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종종 있다.) 여기서 늘어놓은 질문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얼마나 흥미로운 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별적 단위를 파고드는만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페이스북 메모는 언젠가 체계적으로 글로 풀어내야 할 자율학습 과제이고, 이와 함께 반 의무적으로 지면 이외에 전시 기획으로 연결할 방법도 찾고 있다.
인정머리 없는 나는 유카리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폭우가 지나갔고 전국에서 백여명이 목숨을 잃고 고속버스가 올스탑했었지만 저는 무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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